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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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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지 못한 말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이 되었다. 글이 되어버린 나의 초라한 말들은, 너를 미워하는 순간마저 너를 사랑하고는. 이내, 별이 되어 너를 그린다. 이 글은 너에게 다시 닿을 수 있을까.
하늘에 빛나는 별이 있었다. 그 별을 해맑게 바라보던 네가 마냥 좋아서. 나에게는 너무 멀고 높았지만, 그럼에도 따다 주고 싶었다. 그 빛나는 별이 너와 썩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별을 받고 웃을 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 나는 너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늘은 너무 높았으며, 별은 너무 멀었다. 나는 이를 더 꽉 물었다. 나는 별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었다. 슬피 우는 새들을 모른척 짓밟고, 밤하늘을 위해 태양을 끌어내리며, 때때로 번개가 내 몸을 때려 피를 흘려도. 나의 땀내 배인 피를 보며, 너는 놀라 울었지만, 우는 너를 외면했다. 별을 따오면 다 괜찮을 거라 믿었기에. 결국 별을 따온 내 옆에, 너는 없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너는 한 번도 별을 원했던..
마음 산들바람 한 조각 살랑여도, 사시나무인냥 몸을 떨어대는. 나의 마음은 어찌 이리도 나약한가.
발자국 간만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창밖에는 눈이 내리더라. 주섬주섬 외투를 걸치고 담배 한 갑 살 겸 길을 나섰다. 약간은 매캐한 눈 내음을 느끼며 밋밋한 눈길에 발 도장을 쾅쾅 찍어본다. 새하얀 눈 위로 어지러이 그려진 편의점 앞 나의 발자국들. 이 발자국들을 되짚어가다 보면 그 끝에 네가 있겠지. 이 발자국들 하나하나엔 그날의 우리가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담배 한 개비를 태우다 보니, 못난 나의 미련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린 눈은 나의 발자국들을 덮어버렸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금세 지워진 것처럼, 아직은 선명한 당신과의 기억들도 언젠간 잊혀지겠지. 우리의 발자국 위로 외로이 쌓인 눈. 그 눈 위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결국 각자의 새로운 발자국을 그려가겠지. 그걸 아는데도, ..
어른이 된다는 건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은 맘처럼 쉽지 않았으며, 인간관계 중 반절은 오해와 가식으로 쌓아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 돈을 버는 이유를 억지로나마 만들고자, 처음으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보냈다. 그 순간 스쳐가는, 잠든 나를 깨우시던 당신의 목소리, 소주향 물씬 나는 한 섞인 숨결과 볼에 닿는 까끌 거리던 턱수염 그리고 당신의 손에 들린 통닭 한 마리. 아버지, 사실 그날 당신은 많이 지치셨었나 보다. 졸린 눈을 비비고는, 히죽거리며 통닭을 먹는 나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의 웃음을 보시려고, 그렇게 당신은, 스스로 한 번 더 버티려 하셨나 보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렇게 수십수백 번을 당신이 버텨왔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너무나 ..
멀티탭 아이폰을 충전하려고 충전기를 꽂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충전이 안되더라. 이건 아이폰의 잘못일까 아니면 충전기의 잘못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전원이 꺼져있는 멀티탭을 발견했다. 괜히 서글퍼졌다. 우리의 끝도 결국 너와 나의 잘못이 아닌, 사실은 멀티탭의 잘못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건 사실이 아니어서.
소개팅 혹시 투박한 내 몸짓을 오해할까, 평소보다 조심해서였을까. 혹시 내 말투가 가벼워보일까, 어제보다 말을 줄여서였을까. 낯선 내 모습이 괜히 멋쩍어보여, 홀로 콧등을 긁적이던 초겨울 늦은 저녁. 이제는 흐릿한 그날의 일들은, 지워지지 않을 1이 되어 당신과 내 카톡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서운할 이유 호기심이 설렘이 되고, 설렘은 웃음이 되고, 웃음은 이윽고 눈물이 되었다. 마땅히 찍혀야 할 마침표를, 마지못해 쉼표로 대신할 때즈음, 너는 자꾸 나에게서 서운할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더라. 너의 억지가 “나를 계속 사랑해달라”는 말의 동의어라는 것을, 그 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 나는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나보다.